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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닷의 사건사고 리뷰/[사건사고]

-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by 닷닷 2022.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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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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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과거 오스만 제국 육군의 장군이자

 

갈리폴리 전투와 터키 독립전쟁의 참전영웅이지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위르크의 성씨인 아타튀르크는 튀르크인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으로

 

성씨 사용법이 통과되고 나서 터키 국회가 그에게 헌정한 성씨이며

 

그에 걸맞게 현대 터키의 국부로 칭송 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가 아직 오스만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인

 

1881년 5월 19일 지금은 그리스 테살로니키인 세랴니크에서 국경세무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푸른 눈과 하얀 피부, 그리스 지역의 출생으로 전통적인 동양계 튀르크인과는 거리가 멀고

 

순혈 튀르크인이 아니라는 혼혈 논란도 있었던 아타튀르크는

 

생전에 자신도 그 점을 인정하고 다인종이 섞여있는 터키 특성상

 

터키어를 쓰고 터키 문화로 살아가는 사람을 모두 터키인으로 정의했고 평생을 터키를 위해 살아간 인물입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아타튀르크는 1893년 살로니카 군사 학교에 입학한 아타튀르크는

 

1896년에는 마나스트르 군사 고등학교에 1899년에는 오스만 군사학교에 입학하여 1902년 졸업하였고

 

이후 1902년 소위로 임관될 것을 마다하고 다시 오스만제국 군사대학을 졸업하여

 

1905년 늦었지만 소위로 임관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재학생 및 성적  우수 특혜로 얼마지나지 않아 중위로 진급하였고

 

졸업 후 아타튀르크는 반독재주의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몇 개월간 구속되었다가

 

전 학교 교장이었던 리자 파샤의 변호로 출소할 수 있었습니다.

 

출소 이후 그는 오스만제국 5군 사령부의 대위로 임관하였고

 

그는 압둘 하미드 2세에 독재를 반대하여 청년 비밀결사 단체인 조국과 자유에 가입합니다.

 

1907년에는 시니어 캡틴으로 진급하였으며 1908년에는 동부 루멜리아의 철도 감독관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909년 이스탄불에서는 군인들에 의해서 반혁명 운동인 3월 31일 사건이 발샐하였는데

 

아타튀르크는 이 반혁명 운동을 진압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이후 1911년 아타튀르크는 오스만령 트리폴리타니아(현재 리비아)로 발령받았고

 

그 곳에서 이탈리아 - 튀르크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오스만군은 예멘 혁명을 진압하기위해 병력이 차출되어있어 병력과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아타튀르크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군을 여러번 격퇴시켰고

 

특히 1911년 12월 22일 토브루크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아타튀르크는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는 것 반대하였지만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 참전하였고 대령으로 진급한 아타튀르크 역시 전선으로 향합니다.

 

아타튀르크는 영국군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전공을 세우고

 

군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으며 이 공로로 장군으로 진급합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아타튀르크였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은 협상국의 승리로 끝났고

 

승리한 협상국은 동맹국소속인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협상국은 세브로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면서

 

튀르크의 본토인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강대국들에게 분할되어 점령된 상황에서

 

아타튀르크는 이러한 협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며

 

1923년 마침내 세브로 조약을 파기하고 로잔 조약을 새롭게 맺으며 전쟁은 끝이납니다.

 

이 전쟁의 승리로 터키의 본토인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사수할 수있었으며

 

이 일을 기점으로 아타튀르크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칭송되게 됩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아타튀르크는 192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의 수립과 같이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타튀르크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은 오스만 제국의 출신임에도

 

정교분리, 세속주의를 추구한 인물이며 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서구화를 단행한 인물입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터키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법체계 면에서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아닌 대륙법을 따르는 공화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이슬람 학자들이 철천지 원수로 인식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아타튀르크는 혼란스러운 국제정세를 잘 이해하고 잘 행동한 유능한 지도자라는 것이 현재의 평가입니다.

 

간경화 판정을 받은 뒤에도 집무를 보다가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운명하였습니다.

 

때문에 터키는 매년 11월 10일 오전 9시가 되면 5분간 묵념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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